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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유령 부동산 번역을 잠깐 쉬고 읽은 시리즈입니다.

읽는 분이 없다는 건 이럴 때 좋은 일이죠..

슈거 애플 페어리테일, 설탕 사과 요정 이야기 시리즈입니다.

이건 2010년에 1권 <은설탕사와 검은 요정>이 출판된 뒤 2015년에 본편과 외전을 포함해서

총 18권인가 17권인가로 완결된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옴니버스 형식이 아니라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는 형식.

 

저와는 미묘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참 전에 요정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샀는데, 검색을 잘못 해서요..

출간연월일 순서를 잘못 봤는지... 난데없이 14권을 구매해 버렸습니다.

첫머리를 펼치는 순간 '아 이거 뭔가 아닌데...?'하고 재검색해서 얻은 충격의 진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으니...

결국 약 5년쯤이 지난 지금에야 킨들판으로 1권부터 제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는 가도카와 빈즈.

저자는 미카와 미리 님. 아마 설탕 사과 시리즈가 데뷔작인 것 같은데...

데뷔작부터 저 정도의 장편.... 다시 생각하니 굉장하네요.

설탕 사과를 완결한 뒤로는 <일화 후궁 요리첩一華後宮料理帖>이란 시리즈를 씁니다.

지금은 9품, 그러니까 9권까지 나왔네요.

 

일러스트는 '아키'라는 분이 담당했습니다.

내부 삽화가 있는 책인데 마지막까지 작화 붕괴는 생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마녀의 결혼> 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서 이후로 시리즈 물에서는 계속 신경쓰게 되네요....;;

 

덤으로 제목은 전부 '은설탕사와 #(색)의 ***' 형식입니다.

1권이 <은설탕사와 검은 요정>, 본편 마지막 권이 아마 <은설탕사와 검은 요정왕>.

저는 4권인 <은설탕사와 녹색 공방>까지 읽었습니다.

10년 전이면 채운국 시리즈 시절이니... 유행이었죠, 저런 거.

 

 

스토리... 라기보다는 세계관 설명이 조금 길어집니다만...

 

요정과 인간이 공존하는 가상의 왕국 '하이랜드'가 배경입니다.

요정은 자연 만물이 어떤 존재의 시선을 통해 에너지를 받으면 깨어납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을 인간이나 동물이 바라보면 그 시선을 받고 풀잎 이슬의 요정이 깨어나는 식.

요정의 수명은 제각각이라서, 본래의 물질에 따라 결정됩니다.

물의 요정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백 년까지. 이슬의 요정이라면 몇 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이 정해져 있고, 본인이 태어난 물질의 기억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요정들은 수는 많지 않으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살았습니다.... OTL

 

지금으로부터 몇백년 전.

요정들의 지배를 견디다 못해 떨쳐 일어난 '시조왕'은

'요정왕'과 결투를 벌여 승리하고 인간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요정의 지배를 벗어난 인간은 이제 자유롭게 요정을 노예로 부리며 살게 되었...... OTL

 

요정에게는 본래 날개가 두 장인데, 요정 사냥꾼이 요정을 잡으면 날개 한 장을 뜯어냅니다.

온 몸이 잘게 찢겨 나가는 정도의 고통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날개는 요정의 생명력이 응집된 부위라서 날개를 없애면 요정은 죽습니다.

날개를 쥐어 짜거나 짓눌러도 온 몸에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사역하는 요정의 날개를 숨겨놓고 협박을 통해 요정을 사역합니다.

요정은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전사 요정', '노동 요정', .......'애완 요정'. OTL

애완 요정은 스몰 사이즈 관상용부터 빅 사이즈 19금까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요정들 역시 날개를 훔쳐서 자유를 되찾기도 합니다.

전사 요정들은 보통 날개를 되찾으면 주인을 죽여 버린다네요.

그렇다고 되찾은 날개가 도로 붙는 건 아니고요.

남은 한 장의 날개마저 뜯기면 곧 죽는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요정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요정이 유일하게 맛을 느끼는 음식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설탕 과자'.

'설탕 사과'라는 특수한 과일을 정제하면 '은설탕'이 나오는데요.

이 '은설탕'을 물에 개어 색소를 섞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현대로 치면 설탕 공예품입니다.

은설탕의 형태도 요정들이 느끼는 '은설탕의 맛'에 포함됩니다.

본래 요정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인간들이 만듭니다.

잘 정제한 상급 설탕으로 만든 아름다운 설탕 과자는 주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생일이나 결혼, 신년 축하 등 경사스러운 자리에는 반드시 설탕 과자를 사용합니다.

 

설탕 과자 장인들에게는 3대 파벌이 존재하고요,

1년에 한번은 설탕 과자 장인들을 대상으로 왕궁에서 경연대회도 개최합니다.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은설탕사'라는 칭호를 하사해 줍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은설탕사에게는 자작 작위를 내려 '은설탕 자작'이라고 부르고,

은설탕 자작은 왕국 전체 은설탕사들의 대장으로 군림합니다.

 

 

자, 이러한 세계에 '앤 할포드'라는 빼빼 마른 허수아비 같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엠마 할포드'라는 은설탕사의 딸로, 파벌에 속하지 않은 자유 은설탕 장인입니다.

낡은 마차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설탕 과자를 팔며 삽니다.

엠마는 물론 16살의 앤 역시 상당한 실력파.

가난하고 힘들지만 즐거운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엠마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어머니를 묻고 외톨이가 된 앤은 결심했습니다. 은설탕사가 되자.

은설탕사 선발장은 꽤 멀고, 여행길의 치안은 좋지 않아서 호위가 필요합니다.

별 수 없이 앤은 전사 요정을 사기로 했습니다.

요정을 노예로 부리는 건 싫어하지만 은설탕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사 요정은 재고가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의 늘씬한 요정.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생명체 같습니다.

어딜 봐도 애완 요정인데...? 했으나 실력 좋은 전사 요정이라고, 상인은 말합니다.

그 대신 입버릇이 정말 정말 정말 싹수가 없어서 손님 속을 긁어놓아서 팔지 못했다고.

초면인 앤에게도 다짜고짜 허수아비라고 비꼬는 말투가 일품입니다.

심지어 "너, 날 사라."라고 명령까지 해댑니다.

 

매우 울컥거리기는 하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고, 상인이 대폭 할인가로 팔아 준다고 해서

가난한 앤은 어쩔 수 없이 전사 요정 "샤르 펜 샤르"(흑요석의 요정)를 사서 여행길에 오릅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구해준, 시끄러운 요정 "미스릴 릿드 폿드"(호수 물방울의 요정)와 함께,

셋이서 투닥투닥거리면서 은설탕사 경연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 3명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굴러갑니다.

 

 

...자, 그럭저럭 10년 전의 라노벨. 예상하시겠지만 주인공은 연애를 할 예정입니다. 요정과.

미스릴 릿드 폿드가 아니라 샤르 펜 샤르와.

종족을 뛰어넘은 사랑이 펼쳐지는 훈훈한 이야기...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뼈아픈 중세 길드 문화가 펼쳐집니다.

 

애초에 은설탕사는 파벌 중심으로 스승-도제 관계가 강한 직종이고, 여성에게 배타적입니다.

파벌도 없는 어린 여자인 앤은 세상의 모진 풍파를 온 몸으로 받게 되죠.

설탕 과자를 가로채려는 쓰레기가 있지를 않나, 정제 은설탕을 훔쳐가는 놈이 있지를 않나,

은설탕사 전체에게 알리는 공지 사항을 혼자 전달받지 못한다거나,

은설탕 자작에게 미인계로 접근해서 설탕 과자를 만든다는 루머에 시달리고,

그 와중에 (건전한 의미로) 스폰서가 되어 줄테니 내 밑에서 과자만 만들어라, 가 나타나고

'더럽게 몸으로 설탕 과자를 파는 여자 따위 자격 없어!'라며 손을 망가뜨리려는 남자들도 등장.

 

물론 샤르와 미스릴은 옆에서 열심히 도와줍니다.

그러자 샤르와 미스릴의 날개를 훔쳐서 그걸로 앤을 협박하는 사람까지 나타나는 이 험한 세상.

 

그래도 앤 할포드는 장인 정신 넘쳐나는 당찬 여성입니다.

나는 설탕 과자 밖에 만들 수 없어, 내 설탕 과자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면 좋겠어,

그러니까 한번 받은 일은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확고한 프로 정신과 탁월한 재능으로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물론 인생 한 번에 잘 풀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야금야금.

 

그리하여 4권까지는 앤이 은설탕 장인으로 자리잡는 성장물에 가깝습니다.

이후로는 요정왕의 후계자가 나타나면서 요정 독립 운동이 시작되고,

과격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요정들끼리도 대립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갖은 역경을 헤쳐 나가 무사히 엔딩을 맞는다고 합니다.

저도 아직 덜 읽어서...

...무사히, 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애에 성공해서 주인공들은 행복하다니 뭐..

......자네 그걸로 괜찮은가, 앤.....

 

아무튼, 드라마 CD도 나왔을 정도로는 꽤 인기가 있던 시리즈입니다.

가도카와에 아직 작품 페이지가 남아 있기도 하고요.

https://beans.kadokawa.co.jp/product/series24/

 

코믹스도 나왔습니다. 13년과 14년에, 은설탕사와 검은 요정 파트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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